카자크는 두나이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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Ехал козак за Дунай(러시아어)
Їхав козак за Дунай(우크라이나어)
The Cossack was Riding Horse over Duna River(영어)
작사 : 미상
작곡 : 미상
채록 : 세멘 클리모우스키(Семен Климовський)
18세기 우크라이나의 작가인 세멘 클리모우스키에 의해 채록 된 민요로, 원곡은 우리가 알던 러시아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어로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제 카자크들이 부르던 민요로 추정되며 다뉴브강으로 떠나는 카자크 전사를 그의 연인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슬픈 가사의 노래인데 음은 대단히 흥겹다(...). 소련 시절에 오가르코프가 편곡을 하면서 흥겹게 바뀐듯.[1]
참고로 '카자크는 두나이를 넘었다'라는 원제보다 그냥 코사크의 노래라든지 코사크 송으로도 불린다. 애초에 이건 코사크를 소재로 한 많은 노래에 거의 다 붙는 별칭이지만. 또는 카자크는 도나우를 넘었다라는 제목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배경을 설명하자면 18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과 크림 칸국과의 우크라이나 평원을 둘러싼 경쟁도 대충 승리로 끝나가는 무렵에서 제정 러시아는 지금까지 협력하는 대가로 자유롭게 자치권을 보장해 주었던 자포로제 카자크들을 본격적으로 총 기지인 시흐를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유를 박탈해가기 시작했다. 이 중 많은 카자크들은 지금까지 형식적으로나마 주군으로 모셔가며 협력해 왔던 제정 정부에게 대놓고 반항할 수도 없으니 최근까지만해도 최대 적국으로 열렬히 싸웠던 오스만 제국, 현재의 루마니아 땅으로 도망쳤다. 이들의 여정을 두고 코사크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를 가로지르는 두나이(다뉴브)강을 건넜다고 하는 것. 이들 중 상당수는 훗날 제정 러시아가 다시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일 때 짜르가 내린 특사로 "주님도 너희들을 용서하고, 모국도 너희들을 용서하며, 나도 너희들을 용서한다"라는 사면령을 내리자 그제서야 러시아로 돌아갔으나, 다른 이들은 계속 오스만 제국에 남아 오히려 술탄을 위해 종군하기도 하며 아나톨리아, 그리스 등으로 자취를 옮겨 동화되었다.
여담으로 이 곡에 나오는 '두나이강'은, 우크라이나(혹은 동슬라브) 관용어로 정말 두나이강(다뉴브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넌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카자크 전사라는 곡의 화자와 연결시킨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하러 나간다는 말이 되겠다.
이 점에서는 다뉴브강(또는 두나이강, 도나우강) 자체가 오랜 역사동안 일종의 '문명권의 경계'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중세 초기 동유럽 전역에 슬라브인이 정착하였고, 이 중 동부(현재의 유럽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정도)에 정착한 동슬라브인이 루스인으로 정체화하였으며[2] 루스인이 정착한 땅이 오늘날 동슬라브 문명의 모태가 된 것. 그리고 다뉴브 강은 대러시아의 남쪽 경계선에 해당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뉴브강 하류 이북의 몰다비아나 왈라키아 지방은 루스인의 영역이라고 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오랜 기간동안 독립적인 문명권과 세력을 이루기보다는 주변의 강한 세력에 복속되는 완충지대나 변방의 경계지역 역할을 해 왔던 것. 이에 비해 다뉴브강을 건너가면 러시아의 오랜 숙적이던 오스만 제국의 핵심 영토인 발칸 반도이다. 러시아에 기병 전력으로 기용된 카자크인들이 다뉴브강(두나이강)을 건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러 간다는 의미이거나, 지금까지 속해있던 나라를 버리고 적국으로 투항한다는 의미였기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3]
이 노래는 세멘 클리모우스키가 채록한 이후로도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병사들 사이에게서도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당시 카자크 병사들에게 많이 불려졌다고 전해진다. 러시아 원정 이후 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을 역관광시키는 과정에서 이 멜로디가 유럽 전역에 퍼져서 나름 인지도 있는 곡이 되었다. 폴란드에서도 이 곡을 폴란드어로 바꾸어 불렀고, 특히 독일 같은 경우에는 민카(Minka)라는 주제로 많은 작곡가들이 우려먹었다. 가장 유명한 이로는 베토벤 선생이 있으시겠다. 미국으로도 건너가 1930년대 Yes My Darling Daugther이라는 곡으로도 둔갑했다.
참고로 Ти ж мене підманула라는 여자에게 1주일 내내 바람맞은 남자의 비애가 흥겹게 담겨져 있는 가사를 가진 노래와 멜로디가 흡사한데, 이쪽은 주로 결혼식때 자주 불리는 편. 영어 위키피디아 페이지에는 이 노래로 항목까지 만들어져 있다.
우크라이나 민요인지라 세계적으로는 검은 눈동자나 칼린카급으로 인기가 있지는 않기는 하다만 선율은 꽤 괜찮다.
아래는 가사와 해석. 초보자가 해석한지라 의역이 많은 편. 대충 이런 느낌의 곡이라는 것만 알아두길 바란다. 상당히 부정확하다.
그리고 Ти ж мене пидманула의 가사.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폴란드어와 독일어, 그리고 한국어이다. 프랑스어와 루마니아어 개사곡과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불확실하다.
또한 아일랜드의 민요인 "오로 셰 드 바하 월리어(Óró 'Sé do bheatha 'bhaile)"와 가사빼고는 거의 동일한데,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확인 또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참고곡참고곡2참고곡3
한국에는 별빛 눈망울이라는 동요로서 초등 5학년 음악과정에 러시아 민요로 수록되었다.우크라이나는 공기인가
원제는 Schöne Minka로 동영상의 내용이 맞다면 베토벤의 편곡인 것 같다. 독일어 개사는 크리스토프 아우구스트 티트게(Christoph August Tiedge)가 했으며, 이 곡을 개사해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원제 : Hej Sokoły(매여) 정확하게는 송골매다.
우크라이나에서는 Гей,Соколи라고 표기한다.
이 곡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벨라루스 4개국에서 불러지고 있다고 한다.
폴란드는 코사크와 철천지 원수인데 이런 것은 잘 가져갔다(...). 오르가코프가 편곡을 하기 이전의 원래 곡조를 번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제: 별빛 눈망울
Їхав козак за Дунай(우크라이나어)
The Cossack was Riding Horse over Duna River(영어)
작사 : 미상
작곡 : 미상
채록 : 세멘 클리모우스키(Семен Климовський)
1. 개요[편집]
18세기 우크라이나의 작가인 세멘 클리모우스키에 의해 채록 된 민요로, 원곡은 우리가 알던 러시아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어로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제 카자크들이 부르던 민요로 추정되며 다뉴브강으로 떠나는 카자크 전사를 그의 연인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슬픈 가사의 노래인데 음은 대단히 흥겹다(...). 소련 시절에 오가르코프가 편곡을 하면서 흥겹게 바뀐듯.[1]
2. 설명[편집]
참고로 '카자크는 두나이를 넘었다'라는 원제보다 그냥 코사크의 노래라든지 코사크 송으로도 불린다. 애초에 이건 코사크를 소재로 한 많은 노래에 거의 다 붙는 별칭이지만. 또는 카자크는 도나우를 넘었다라는 제목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배경을 설명하자면 18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과 크림 칸국과의 우크라이나 평원을 둘러싼 경쟁도 대충 승리로 끝나가는 무렵에서 제정 러시아는 지금까지 협력하는 대가로 자유롭게 자치권을 보장해 주었던 자포로제 카자크들을 본격적으로 총 기지인 시흐를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유를 박탈해가기 시작했다. 이 중 많은 카자크들은 지금까지 형식적으로나마 주군으로 모셔가며 협력해 왔던 제정 정부에게 대놓고 반항할 수도 없으니 최근까지만해도 최대 적국으로 열렬히 싸웠던 오스만 제국, 현재의 루마니아 땅으로 도망쳤다. 이들의 여정을 두고 코사크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를 가로지르는 두나이(다뉴브)강을 건넜다고 하는 것. 이들 중 상당수는 훗날 제정 러시아가 다시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일 때 짜르가 내린 특사로 "주님도 너희들을 용서하고, 모국도 너희들을 용서하며, 나도 너희들을 용서한다"라는 사면령을 내리자 그제서야 러시아로 돌아갔으나, 다른 이들은 계속 오스만 제국에 남아 오히려 술탄을 위해 종군하기도 하며 아나톨리아, 그리스 등으로 자취를 옮겨 동화되었다.
여담으로 이 곡에 나오는 '두나이강'은, 우크라이나(혹은 동슬라브) 관용어로 정말 두나이강(다뉴브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넌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카자크 전사라는 곡의 화자와 연결시킨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하러 나간다는 말이 되겠다.
이 점에서는 다뉴브강(또는 두나이강, 도나우강) 자체가 오랜 역사동안 일종의 '문명권의 경계'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중세 초기 동유럽 전역에 슬라브인이 정착하였고, 이 중 동부(현재의 유럽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정도)에 정착한 동슬라브인이 루스인으로 정체화하였으며[2] 루스인이 정착한 땅이 오늘날 동슬라브 문명의 모태가 된 것. 그리고 다뉴브 강은 대러시아의 남쪽 경계선에 해당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뉴브강 하류 이북의 몰다비아나 왈라키아 지방은 루스인의 영역이라고 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오랜 기간동안 독립적인 문명권과 세력을 이루기보다는 주변의 강한 세력에 복속되는 완충지대나 변방의 경계지역 역할을 해 왔던 것. 이에 비해 다뉴브강을 건너가면 러시아의 오랜 숙적이던 오스만 제국의 핵심 영토인 발칸 반도이다. 러시아에 기병 전력으로 기용된 카자크인들이 다뉴브강(두나이강)을 건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러 간다는 의미이거나, 지금까지 속해있던 나라를 버리고 적국으로 투항한다는 의미였기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3]
이 노래는 세멘 클리모우스키가 채록한 이후로도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병사들 사이에게서도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당시 카자크 병사들에게 많이 불려졌다고 전해진다. 러시아 원정 이후 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을 역관광시키는 과정에서 이 멜로디가 유럽 전역에 퍼져서 나름 인지도 있는 곡이 되었다. 폴란드에서도 이 곡을 폴란드어로 바꾸어 불렀고, 특히 독일 같은 경우에는 민카(Minka)라는 주제로 많은 작곡가들이 우려먹었다. 가장 유명한 이로는 베토벤 선생이 있으시겠다. 미국으로도 건너가 1930년대 Yes My Darling Daugther이라는 곡으로도 둔갑했다.
참고로 Ти ж мене підманула라는 여자에게 1주일 내내 바람맞은 남자의 비애가 흥겹게 담겨져 있는 가사를 가진 노래와 멜로디가 흡사한데, 이쪽은 주로 결혼식때 자주 불리는 편. 영어 위키피디아 페이지에는 이 노래로 항목까지 만들어져 있다.
우크라이나 민요인지라 세계적으로는 검은 눈동자나 칼린카급으로 인기가 있지는 않기는 하다만 선율은 꽤 괜찮다.
3. 버전들[편집]
4. 가사[편집]
아래는 가사와 해석. 초보자가 해석한지라 의역이 많은 편. 대충 이런 느낌의 곡이라는 것만 알아두길 바란다. 상당히 부정확하다.
그리고 Ти ж мене пидманула의 가사.
5. 개사곡[편집]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폴란드어와 독일어, 그리고 한국어이다. 프랑스어와 루마니아어 개사곡과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불확실하다.
또한 아일랜드의 민요인 "오로 셰 드 바하 월리어(Óró 'Sé do bheatha 'bhaile)"와 가사빼고는 거의 동일한데,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확인 또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참고곡참고곡2참고곡3
한국에는 별빛 눈망울이라는 동요로서 초등 5학년 음악과정에 러시아 민요로 수록되었다.
5.1. 독일어[편집]
원제는 Schöne Minka로 동영상의 내용이 맞다면 베토벤의 편곡인 것 같다. 독일어 개사는 크리스토프 아우구스트 티트게(Christoph August Tiedge)가 했으며, 이 곡을 개사해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5.2. 폴란드어[편집]
원제 : Hej Sokoły(매여) 정확하게는 송골매다.
우크라이나에서는 Гей,Соколи라고 표기한다.
이 곡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벨라루스 4개국에서 불러지고 있다고 한다.
폴란드는 코사크와 철천지 원수인데 이런 것은 잘 가져갔다(...). 오르가코프가 편곡을 하기 이전의 원래 곡조를 번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5.3. 한국어[편집]
원제: 별빛 눈망울
6. 관련 문서[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0 02:34:25에 나무위키 카자크는 두나이를 넘었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참고로 아래의 우크라이나어 음원은 죄다 오가르코프 편곡 버전이다.[2] 루스인의 기원이 동슬라브인과 북게르만인(노르드인)의 융합으로 탄생했다는 설도 있고 이에 대해서는 루스 문서에 설명되어 있으나 이는 본 주제에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뉴브강이 문명권(문화권)의 경계라는 것은 곧 슬라브인의 거주 권역에서 동슬라브와 남슬라브의 권역을 나누는 경계라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슬라브인은 노르드인의 영향을 받아 루스->대러시아에 이르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발칸에 정착한 남슬라브인은 동로마제국, 헝가리, 오스만제국등의 영향을 번갈아 받으며 그와는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이는 '단'을 붙여 반론할만한 내용이 아니라 그저 그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부연설명일 뿐이다.[3] 오스만 제국이 흥기한 근세 이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다뉴브 강 이남의 발칸 반도는 중세 유럽의 패권국 중 하나였던 동로마 제국의 영토이거나 그 동로마를 여러 차례 위기에 몰아넣은 불가리아 제국의 영토였다. 이 시기는 아직 통일된 러시아 제국이 탄생하기 이전이긴 하지만... 어쨌건 다뉴브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용병으로 돈 벌러 가든지 부유한 발칸 반도를 약탈하러 가든지 여하간 목숨과 인생을 걸 각오를 하지 않으면 넘어가기 힘든 일종의 '경계선'이었던 것.[4] 우크라이나 태생의 오페라 가수이자 소련 인민가수 칭호 및 레닌상 수상자. 1988년 알렉산드로프 앙상블(붉은 군대 합창단)이 런던으로 투어를 갔을 때 앙상블 측의 초청 솔로.